오늘은 일을 껑충껑충 하게 되는 하루다. 요가원을 나와, 쑤시는 등과 어깨를 느끼며 스타벅스로 들어간다. 땀에 절은 옷을 빨고 축축한 몸을 씻고, 새로 나왔다는 채식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도시가스 점검 가능 시간을 연락달라는 물음에 응하고 경향신문에 독자센터에 전화해 디지털 지면 정기결제를 문의한다. 며칠 만에 컴퓨터 스크린으로 신문을 읽는다. 청년 사장 둘이 연남동에 할머니의 이름을 딴 떡집을 운영하는데, 떡메로 떡을 쳐서 젊은 세대에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는 기사 등등. 시계를 보니 3시 30분. 이맘 때 가을 하늘이 푸르고 깊다는 사실이 기억나, 밖으로 나가 걷기로 한다. 광화문 광장을 향해 무작정 걷는다.

 

 횡단보도를 잰걸음으로 건너다 발걸음을 멈춰 하늘을 올려다본다. 광화문에서 삼청동으로 접어드는 사거리다. 위로 향하는 시선에 걸리는 신호등의 빨갛고 파란 불빛, 길을 건너느라 앞뒤로 오고가는 행인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때 불현듯 현재라는 감각, 시간의 성질이 만져진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느껴지듯. 그러자 그 시간과 세상 안에 서 있는 나라는 존재가 낯설어진다. 호흡을 의식하면 숨쉬는 게 부자연스러워지듯. 줄곧 나를 감싸고 있어서 이제는 익숙할 뿐더러 당연해진 공기의 밀도와 시간의 흐름이 숨겨진 이질감을 드러내는 순간.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오후의 한자락을 잡고 있다가 지표면을 딛고 서 있는 내 자신이 아득히 멀어진다. 언젠간 사라질 테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인간의 현존성을 곱씹으니, 가슴이 시원하다. 요즘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생각에. 가장 고요하지만 빛나는 시기라는 생각에.

 

 스타벅스 경복궁 사거리점에서 제주 말차샷 라떼를 한잔 시킨 뒤 세심히 고른 창가쪽에 자리 잡는다. 격자 모양으로 된 나무 판넬 사이로 창 밖이 네모나게 눈에 들어온다. 나무 두 그루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연둣빛 가지들이 가벼이 흔들린다. 저 멀리 우뚝 솟은 북한산 산봉우리가 보인다. 유튜브에서 'Tycho'의 음악을 튼다. 시집을 펼친다. 다음 주 퍼포먼스에 쓸 텍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시집 한 면을 빠르게 훑으며 시어를 골라 마구잡이로 나열한다. 시를 해체하는 일이 지루해지면,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을 야금야금 읽는다. 3장 '글쓰기의 몸짓'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자유는 규칙을 무시하는 데(그것은 만년필로도 가능하다) 있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바꾸는 데(그것은 타자기로 가능하다) 있다."  - 33쪽

 

 이런 문장도 인상적이다.

 

"텍스트는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사전에 알려져 있지 않은 대답이다. 실제로 쓰는 몸짓은 이러한 질문, 즉 '나는 무엇을 표출할 생각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35쪽

 

 타이핑하고 독서하는 와중에 틈틈이 고개를 들어 격자 무늬로 된 하늘에 시선을 둔다. 나무 두 그루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밝은 연둣빛으로 반짝이다가 사위가 어두워질수록 해와 함께 진한 녹색으로 저물어간다. 시간이 한 시간 남짓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움직임이 일어나는지. 그 움직임을 일일이 알아채지 못할 뿐. 구름을 그리려고 드로잉북에 스케치할 때, 구름이 금세 모양을 바꿔버려 난감했던 적이 있다. 쿠룬타에서 허리를 젖힌 채 거꾸로 누워 아파트 건물 사이로 하늘을 바라볼 때, 구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깨닫고 놀란 적도 있고. 우리는 세상을 정물처럼 대하지만, 만물은 끝도 없이 움직인다. 하기는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요가 아사나도 쉬지 않고 근육을 움직이며 정렬을 맞추고 날숨과 들숨을 거듭하는 끊임없는 과정일 따름이니까.

 

 상념에 잠기려는 찰나 길고양이가 느릿느릿 지나가며 시야를 흐트러트린다. 벌써 밤이 오려는 모양이다. 슬슬 다시 배가 고프다. 화면에는

이불을  하늘  너머로  매만지는  증오  눈먼  잠옷을   오므렸다  포근한  그림자  실핏줄을  어깻죽지에  달빛 속에는

따위의 단어들이 즐비하다. 한 페이지를 마저 채우고 일어날 것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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