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ina's World, Andrew wyeth, 1948
그녀를 처음 본 건 뉴욕시립미술관이었다. 사람들이 복작이는 그곳에서 나는 그녀의 뒷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그림 앞에 서 있었다. 주저앉았지만 한 쪽 팔을 간신히 치켜든 모습. 만약 팔다리를 모두 땅에 붙아고 누워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저 여자를 알고 있다. 걷고 걷고 걸어서 이제는 앉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서 쓰러지듯 주저앉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 곳'에 시선을 던지는 것 밖에. 에너지란 에너지는 모두 소진되고 감각이란 감각은 거의 마비되어,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 앞에 내던져진 절망을 그저 바라보는 것.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긴 돌아가야할 곳일까, 혹은 도달해야할 곳일까. 저곳에 닿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그녀의 몸은 이미 당도하리란 희망을 체념했다는 듯 땅으로 낮아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왼손은 앞을 향해 뻗어있다. 갈망의 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지만 갈 수 없다, 그녀는. 끈질기게 뻗은 손 때문에, 나는 이 그림을 사랑하게 되었다. 좌절하였지만 아직 좌절의 마침표를 찍지 않은, 걸어가지 못하지만 그 곳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그녀가 기어서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에. 모든 감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서 나오는게 아닐런지. 그 '실낱 같은 것'들 때문에, 우리에겐 삶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주어진다. 주저앉은 그녀가 오른손을 짚고 몸을 일으켜, 더디지만 차츰차츰 '그 곳'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나는 가만히 그녀의 등을 어루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