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난 나는 복도 많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울려퍼진 이희문의 구성진 가락('찬실이는 복도 많지')을 듣다가 극장의 어둠을 빠져 나와 다시 세상의 빛으로 걸어나왔을 때, 아주 오랜만에 햇살만큼이나 따스한 기운이 마음에 감돌았다. 스크린에서 스며든 것이 분명했다. 찬실과 찬실의 친구들이 시종일관 보여주는 태도는 소리소문 없이 보는 사람에게 자족과 포용의 순간을 선사하기에, 그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마음이 스르륵 열린다.

 찬실이는 엔딩송의 가사 그대로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고 사랑도 가고 청춘도 갔다". 그래서 지금까지 연애도 안 하고 뭐 했을까 스스로 한탄하기도 하고, 주인집 할머니에게는 그 나이 먹도록 시집도 안 갔느냐는 타박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마흔 먹은 비혼 여성이 듣게 되는 너무나 뻔한 말은 찬실에게도 화살이 되어 꽂힌다. 게다가 그때까지 연애도 결혼도 뒷전으로 미뤄두게 한 '지감독의 프로듀서'라는 유일한 커리어마저도 뚝 끊기고 만다. 찬실이의 인생 동력이 갑자기 사라진 이때부터 그의 고민과 성찰이 시작된다.

 찬실에게 영화와 PD일이란, 단순한 밥벌이 이상이었다. 열정과 청춘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꿈 자체였다. 자기 삶의 전부라고 여긴 것이 한순간 사라진다면, 걸어온 길을 되짚고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딘지 진단한 다음, 나아갈 방향을 다시 정하는 법이다. 그러나 회의, 자책, 허무, 절망, 암담... 잿빛 감정들의 지난한 행렬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찬실이는 답을 찾는다. 장국영이란 미지의 사나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장국영은 영화를 향한 찬실의 지극한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다. 어떤 사랑이든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초에는 그 사랑을 피어나게 한 원형이 자리잡고 있기 마련이다. 찬실이가 어릴 때 즐겨 보던 홍콩영화의 심볼, 대표적인 얼굴이 바로 장국영이다. 영화를 맛보기만 해도 기쁨으로 배부르던 시절에는, 굳이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순수하게 즐기고 마음껏 사랑했을 것이다. 만약 장국영의 정체가 장국영의 탈을 쓰고 찾아온 찬실의 과거라고 가정한다면? 과거의 찬실이 현재의 찬실에게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란 무엇이니? 꿈이란 무엇이니? 원하는 건 무엇이니?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고 난 뒤, 찬실이 얻은 지혜는 다음과 같다.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저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삶 안에 영화가 있지, 영화 안에 삶이 있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 꿈이라고 여긴 것이 잠시 멈춰섰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그렇다면 꿈은 안달복달 꿔야만 하는 목마른 의무가 아니라, 삶의 흐름을 따라갈 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는 선물일 테다. 원하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찾고 지칠 때까지 쫓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고 나눌 때 빛나는 것이다. 찬실이가 나직한 목소리로 달에게 비는 소원처럼. "우리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원하는 것".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고 조금은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 보면, 행복은 꿈을 쟁취해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에 이미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주인집 할머니는 바람이 없어진 게 나이들고 가장 좋은 점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를 써서 하지." 그가 쓴 시, 찬실이 울음을 터트리게 하는 시에도 혜안이 녹아 있다. "사랑도 꽃처럼 돌아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랑은 돌아오지 않지만 꽃은 돌아온다. 사랑에 꿈을, 꽃에 삶을 넣어 보면, 우리네 삶이 오르고 내리는 순환의 법칙을 떠올리게 된다. 삶이라는 큰 그림에서는 내리막길처럼 보이는 찬실의 현재도 곧 다른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김초희 감독이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내 겨울일 것만 같던 혹독한 계절을 지나 비로소 봄을 맞이했을 때 느껴지는 가슴 벅참! 그것이 바로 <찬실이는 복도 많지>가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밝힌 바와 같이(시사인 650호 김세윤의 '웃기다가 울리다가 뭉클하고 가슴 벅찬...'에서 재인용).

 삶은 꿈보다 훨씬 크고, 우리는 그저 삶이라는 너른 품에 안기면 되는지도 모른다. 영화라는 꿈이 온통 뒤덮고 있던 찬실에게 이제 꿈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진 찬실은 손전등 하나로 발 밑을 비추고 때로는 앞서 가는 사람들을 뒤에서 밝혀주며, 삶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려 한다. 그에게 펼쳐질 삶의 너른 품 안에서, 삶을 꾸리고 소중한 꿈을 가꾸며 지복과 만나려 한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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