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조각들 2008. 10. 7. 22:16


아주 초기의 지구를 상상해본다. 투명한 바다와 미세먼지 없는 하늘, 광활한 숲과 흙을 밟을 수 있는 땅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 호모 에릭투스 혹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어쩌면 그보다 더 진화한 호모 거시기는 그곳에서 살았을게다. 알몸으로 뛰어다니며 동물을 사냥하거나 채식주의자라면 수렵이나 채집생활을 했겠지. 이제는 세계사의 첫 페이지나 '생명의 기원을 찾아서' 같은 과학책에서나 접할 수 있는 그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호모' 라는 성을 가진 이들보다는 현생 인류라고 할 수 있지만, 원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알려진 북미 인디언들 말이다. 물론 그들이 평화로운 목소리로 읊어주는 시에 가까운 말들은 감동적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도 동떨어져있기에 그 활자들은 하루 이상 머리에 남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오존층이 뚫린지 이미 오래, 자외선이 머리로 여과 없이 쏟아지고 황사와 온난화로 지구가 앓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 그들의 울림은 마치 맑스가 자본주의를 향해 한 말과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자본주의는 맑스의 말을 참고하여 멋지게 자가변형을 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디언들의 말은 허공 속의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죽어가고 있으므로. 

 저 세상의 인디언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 대지 위에 쌓여가는 쓰레기들과 들썩이는 집값으로 괴로워하는 한국인들을. 신자유주의 광풍이 몰아치는 2008년 한국,따뜻하게 혹은 시원하게 마음 편히 사지를 눕힐 곳은 평생 뼈빠지는 노동의 대가로도 얻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곳이다. 평당 가격을 계산하고 땅을 거래하는 우리들을 어쩌면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사고로는 집을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절대로.
 


time of gypsy 77.5X 47.5cm 장지위에 유화 2004 , 김형태 

 사실 내가 하려는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땅은 누구의 것인가? 아파트가 우뚝선 그곳은 강부자의 것이 아니다. 타워팰리스가 점령한 대치동의 땅은 귀족들, 그 희귀한 왕족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필요로 할때, 우리는 그것을 공공재라고 부른다. 그리고 공유한다. 빌려쓰고 나눠쓰고 독점하지 않는다. 마치 인간 존재에 대한 태도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우리는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 누군가를 갖는다는건, 사랑과 욕망의 그저 완곡한 표현이다. 그래서 가질 수 없는 너와는, 관계를 맺는다. 땅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인디언들은 땅을 대상이나 객체가 아닌 살아있는 주체로 보았다. 파헤치고 분할하기보단 돌보면서도 의지해야할 역동적인 주체 말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신성한 시장자본주의 사회에서 땅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거래되어야 하는 무엇이다. 우리 사회에서 땅값이란 당연하게도, 피라미드에서의 위계를 정해주는 계층 척도와도 같은 것,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요인이다. 조그만 전세집이라도 소유한다는건 극하위층에 들진 않는다는 위안을 줄 뿐이다.
  
 아주 원론적인 질문은 하나 더 던져본다. 의식주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아니던가? 그리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는 아무런 조건없이 누구에게나 제공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단순한 문장은 여전히 진지하지만 진부한 표어가 되어버렸다.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무력하기까지 하다. 


 요즘에는 백일몽처럼 하늘 위를 나는 꿈을 꾼다. 근데 웬걸, 날다보니 집이 보인다. 어찌된 일일까.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땅을 버리고 우리는 하늘로 올라왔어, 담장을 손질하면서 그가 말한다. 한국에서 전세값 월세값 집값 걱정없이 살 곳을 찾는건 하늘에 집을 짓는 것 만큼이나 버거운 일이야, 그래서 하늘로 올라와버렸어.. 서글프면서도 잠깐이나마 안심이 되는 꿈이었다. 한국에서, 어딘가 편히 거주할 곳을 찾는다는건 그만큼 힘겹다.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없이는. 집이 특권이 아닌 당연한 권리가 되는 그 날은 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집을 사랑하고, 애정을 다해 그 집이 발 디딘 땅을 어루만질 그 날이.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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