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전>은 감독의 욕심만으로는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삼각관계, 계급적 갈등, '이야기'에 대한 창작 혹은 구성, 미담 비꼬기, 성에 대한 해학 등등 많은 것을 담으려는 욕심은 넘쳐나지만 어느 것 하나 마무리 짓거나 버무리지 못한 채 허겁지겁 끝내버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완성도도 완성도지만 나의 빈축을 산 부분은 다른 데 있다. 이름하야 계급을 뛰어넘으려는 하층계급 남성의 정복 판타지! 오호, 벌써부터 감이 온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 역시 <방자전>의 내러티브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더 노골적으로 표면에 떠올라서 몇 자 끄적여보려고 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많이 보아온 이들에게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으니 이쯤에서 창을 살포시 닫아주셔도 무방- 그리고 스포일러 있음을 미리 알려둠)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의 방점은 방자의 욕망에 찍혀있다. 방자는 몽룡의 몸종으로 <춘향전>에서는 향단과 함께 춘향과 몽룡을 이어주는 실질적인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만약 방자가 춘향을 탐한다면?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한갓 상놈인 방자가 감히 양반인 몽룡의 연인 춘향을 넘본다는데 있다. 주지하듯이, 방자와 몽룡의 '대결'에는 바로 계급이 중요한 요소다. 

 계급이라는, 지겹도록 되풀이되는 주제를 방자와 몽룡의 쟁탈전에서만큼은 빠뜨릴 수 없지 않은가. 방자는 못난 양반인 몽룡을 누르고 춘향을 '가져야겠다'고 말한다. 어느 모로 보나 뛰어난 방자는 안타깝게도 하인이라는 신분 때문에 춘향의 애인은 될 수 있으나 결정적으로 그가 바라는 '지아비'는 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좌절된 방자의 욕망은 엔딩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포장된다. 방자의 사랑을 저버린 춘향은 결국 처벌 받게 되고, 방자의 '아이'가 된다. 자신을 '비싸게 팔아서' 신분 상승을 이룬 춘향에게는 가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순정을 다 바친 결과 방자는 춘향을 소유하겠다는 꿈을 이룬다. 남성 판타지에서, 이렇게 그의 꿈은 이루어진다.

  신분에 가로막힌 사랑 이야기의 외양을 가진 듯 보이나, 사실 영화는 기저에 남성의 핵심적인 판타지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정판봉 선생의 스킬이다. 두 남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남성 위주의 많은 삼각관계 스토리가 그러하듯, 춘향은 이들 사이에 거래되는 객체일 뿐이다. 

 정판봉 선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여자의 마음을 훤히 읽어서 '턱 기술' '뒤에서 보기' 같은 기술로 평생 20,000명의 여자와 잤다는 전설적인 한량이다. 정 선생의 기술을 전수받은 마 영감은 방자에게 카운셀링을 해주며 춘향을 '품을 수 있는' 방법을 귀뜸해준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냄새가 난다. 그렇다. 현대의 무수한, 자칭 연애지침서들이 애용하는 여자 꼬시기 방법들이다. 

 그 지침서들은 여자와 자기 위한 스킬들을 유머를 곁들어 늘어놓지만, 결국에는 범람하는 상투성으로 피곤을 부를 뿐이다. 스킬의 핵심에는 여자를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라 이러저러하게 꼬시면 잘 수 있는 일회성 유혹물로 바라보는 시선이 내재한다. 방자가 춘향의 방에 숨어들어가 뽀뽀해도 되냐, 안아도 되냐, 만져도 되냐 아무리 물어봤자 뭐하나. 결국 그는 그녀의 의사는 듣지도 않고 덮치기 바쁘다. 현대에도 널리 퍼져있는 남성의 정복 판타지는 곱게 한복을 갈아입고 탈바꿈하여 <방자전>에 나타난다. 전통적인 정절 개념에 갇혀있던 춘향은 거기서 빠져나오지만 또 다시 정복 판타지에 갇히고 만다. 

 고전을 패러디하려는 시도는 용감하지만, 섹슈얼리티에 대한 상상력은 어찌나 이리도 빈곤한지. 아니, 어쩌면 발상 자체는 과감하고 신선했지만 플롯을 구성하는 상상력이 부족한건지도. 답답한 <춘향전>에서나, 두 남성의 계급 대결에 압도된 <방자전>에서나, 춘향은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는 캐릭터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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