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의형제>

영화리뷰 2010. 2. 22. 09:27


 스크린에 꼼짝없이 붙들렸던건 단지 강동원의 미모에 시선을 빼앗기고, 게다가 그 미모의 강동원이 나의 이상적 남성상을 연기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의형제>라는 제목에서 암시하는 그 둘의 관계와 한반도 분단상황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식상해지기 쉬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주제의 식상함에도 불구하고 그 식상함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노력 중 하나는 단선적이지 않은 송지원(강동원 분)과 이한규(송강호 분)의 캐릭터. 곧잘 이분법적으로 그려졌던 북한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답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북한에서 온 인물들의 캐릭터는 경직되어 감정을 찾아보기 힘든 냉혈한 간첩이거나 한결같이 촌스럽고 지나치게 순진했다. 비록 송지원은 주체사상의 세뇌로 국가의 명령에 복종하지만, '민주주의 국가'  남한에 사는 이한규보다 여성 친화적이고 인간적인 가치를 중시하며, 심지어 백숙을 요리하는 가정적인 면모까지 갖췄다.
 
 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한규에게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되묻는 그는 북한의 사회주의(혹은 사회주의의 탈을 국가자본주의)를 대표한다기 보다, 의로운 한 인간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그도 한국남자와 결혼했다가 가출한 이주여성을 찾아서 끌고 오는 '비인간적'인 일을, 단지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할 수 밖에 없으니 당연히 남한 자본주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다.
 
 이한규는 끊임없이 입으로는 빨갱이를 되뇌일 정도로 남한 반공세력의 핵심에 있지만 국가안보를 위한 투철한 사명감이라기보다는 그저 한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직업적 성실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비춰친다. 그는 천박하게 돈만 쫒는 것 같아 보이다가도, 베트남 여성이 혈육과 재회하는 장면에서는 뭉클해지며 '빨갱이'인 송지원에게 점점 동화되기도 한다. 



 또 다른 노력은 작위적이지 않은 영화의 흐름. 송지원과 이한규은 그저 '한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게 아니라 같이 부대끼는 일상생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의형제'가 되어간다. 송강호의 말마따나, "가족이 뭐 별거 있나 같이 밥 먹는게 가족이지." 관객의 눈물을 의식한 장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관객을 억지로 눈물의 바다에 빠트리려고 하진 않는다. 
 
 여느 간첩추격신과 다를 바 없는 초반의 액션난투극이 지나가면 마치 다른 영화를 보는 듯 이한규와 송지원의 로드무비가 은근한 긴장감을 품은 채 이어진다. 송지원은 경계를 풀지 않고 이한규와의 동행을 보고하지만, 서서히 싹트는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날카로웠던 칼날은 무디어져간다. 여기서 단단히 한 몫하는 송강호의 유머는 <의형제>를 비장한 분단영화에서 한 발 빗겨서게 하는 요인이 되어준다. 


 
 커져가는 둘의 인간적인 정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내버려두지 않는 것은 이들의 외부에 버티고 있는 국가라는 거대구조의 압력이다. 북한의 기득권으로 상징되는 인물인 '그림자'나 남한의 실세인 국정원에 의해 이들은 다시 갈등의 소용돌이로 내몰린다. 한반도의 분단이 품고 있는 결정적인 아픔은 우리들의 싸움은 우리가 진정으로 원해서 시작한게 아니라는 것. 

 <의형제>는 이데올로기에 침몰되지 않은 채 이를 한 꺼풀 벗겨낸 북한과 남한의 인간을 비교적 담백하게 그려냈다. 함께 차례를 지내고 술을 마시며 살을 맞댄 채 잠드는 이들은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분단영화에서 한 단계 발전한 듯 보인다. 
 
 하지만 북한사람에 대한 대상화가 없어진 대신 이것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희화화로 대체된 것은 못내 씁쓸하다. 아무리 외부의 싸움이 내부의 갈등을 봉합한다고들 하지만, 베트남 노동자들에 맞서서 싸우는 장면은 솔직히 유치하다. 이주여성들이 동정과 보호의 시선 안에 머무는 것도, 마지막 공항에서 베트남 노동자 두목이 송강호에서 사장님이라고 조아리는 장면 역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유후  -ㅠ-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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