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행복한 때는 꿈을 꿀 때였다.
 다른 이가 되는 상상
 좋아하는 역할을 하는 상상
 실세계를 생각할 때면
 꿈 속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극장을 나오자 감각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연인, 타인>을 보고 나온 후 한동안 실세계에 적응하느라 눈을 꿈벅거려야만 했다. 



 클로드 커훈은 저 우주 너머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녀의 몸,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다. 클로드 커훈이라는 거대한 작품은 바바라 해머의 손을 거쳐 영상으로 다시 태어났고, 나는 넋을 놓고 그녀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주술적으로 반복되는 배경음악, 흑백 스틸사진으로 점멸하면서 이어지는 클로드 커훈과 마르셀 무어의 이미지들, 시처럼 읖조리는 나레이션, 그녀들의 탈규범적인 성향을 짐작하고도 남게 하는 주변인들의 인터뷰들. 그 모든 것들이 스크린 밖으로 전달하는 오묘하면서도, 한편으로 미칠듯이 생생한 에너지에 감염되어버렸다.

 가면 뒤의 또 다른 가면, 자아의 연극화. 주디스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정체성과 주체성은 유동적인 것이니, 이 둘의 쌍둥이 같은 모습도 수긍이 간다. 그녀들의 자아는 겹칠 수도 혹은 어긋날 수도 있다.
 자아란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 옷을 갈아입듯이 입고 벗을 수 있는 행위일 뿐. 클로드 커훈은 분장과 의상을 통해 실제로 정체성을 '재현'해갔다. 
  
 제목 <연인,타인>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둘은 법적인 자매이자 실질적 연인이었다. 가끔 입에 담는 '자매애'라는 단어가 이리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자매, 연인, 타인, 그 어느 범주에도 넣을 수 없는 어쩌면 이 모든 범주를 다 포괄하는 관계를 이들은 직접 실현했는지도 모른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