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신비와 인간적 실존을 그리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기대했었는데, 솔직히 애초 나의 기대와는 다소 다른 방향의 영화였다.

 하지만 샘 벨의 다중성이 달이라는 전혀 생소한 공간에서 다루어진다는 면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잠자던 촉수를 자극!

 특히 요즘 자주 접하는 융의 그림자 개념과 내면세계, 꿈, 무의식이라는 소재와 제법 맞물리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의 내면을 우주에 비유하거나, 그의 클론들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에 빗대어서 생각해본다면 이 주제를 공부하고 있는 이들에게 <더 문>은 꽤나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융 曰 :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그림자를 통합시켜야한다. 대극의 합일처럼.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안의 어두운 면, 인정하기 싫은 면, 그림자를 통찰할 필요 있다.

 그림자를 직면한다는 건 자기 안의 낯섦을 직시하는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보통 비정상적인 '다중이'로 치부하며 두려워하는 내면의 다중성들이 사실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면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에서 클론의 존재가 긍정적으로 나오진 않고, 기업이 이윤을 위해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순 없다. 하지만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자신도 모르는 클론들이 비밀스럽게 존재한다는 사실은, 역동적인 무의식을 표현한 것만 같다. 게다가 지독하게 고독했던 클론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텅 빈 진공상태 같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산소가 되어준다. 무의식의 지도를 탐색한 후에야 얻게 되는 연결감과 일체감을 달리 그린다면 이러한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고.
 
 클론 한명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간 후 안전했던 세계는 난리가 난다. 우주라는 무의식에서 지구라는 의식으로 옮겨간 후, 부조리한 현실은 도전을 받는다. 지구인들은 달이라는 외딴 곳에서 클론이 이용당하고 소모되며 불필요한 분투를 계속하고 있다는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클론의 귀환 이후 그 모든 소모전은 비로소 끝이 난다.  


 여기까지 썼을 때 문득, M이 <트루먼쇼>에 대해 한 말이 떠올랐다. 라스트신에서 트루먼이 천막을 찢고 나가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서,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겠냐는. 

 난 <더 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러한 희열을 느꼈다. 기업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달려드는 클론의 모습은, 신을 포함한 그 모든 부자유와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더욱 인간다워지고자 하는 노력 같아보인다. 지적인 SF 영화라는 생각도 함께.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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