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개그콘서트> 모 코너에서 진한 분장을 하고 나온 개그맨들이 상대방의 과거 사진을 가지고 나와 개그 소재로 삼았던 적이 있었다. 현재의 모습과 확연히 비교되는 그 모습에 사람들은 폭소를 했지만, 난 그저 씁쓸한 미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코너에서 유행하는 말마따나, ‘이거 왠지 씁쓸하구만.’ 내가 이렇게 중얼거린 이유는, 그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책상정리를 하다가, 중학교 때 찍은 독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의 나는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지만 난 마주 보고 웃을 수 없었다. 대신 초등학교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계주 선수 치고는 매우 드문, 포동포동한 몸으로 운동장을 질주하며 상대편 선수를 간발의 차로 앞지르고 있을 때 들려온 말은 “달려라 돼지야!” 그 사진을 불태워서 먹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소위 젖살이 눈꼽 만큼 빠진 지금도, 그 때의 울분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말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은 맛깔스러운 웰메이드 호러다. 워낙 강하게 각인이 되었는지 영화를 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가끔씩 생각이 났다. 뒷맛이 오래가는 이유가 있었나보다.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아 노파로부터 저주를 받은 은행원 크리스티나는 무시무시한 수난을 겪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노파를 생각해서 어떻게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느냐고 팀장에게 따지지만, 회사의 이윤을 생각해서 결정하라는 팀장의 대답에 그녀는 결단을 내린다. 팀장 승진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한 선택이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잃게 할지도 모른다는 걸 그녀가 알리 있었을까. 그 선택이 매정했다고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냉정한 역학관계가 작동하는 현실에 바로 내가 처해있다면 그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게다.


 얄미운 신입 남자 동료가 유력한 팀장 후보로 함께 거론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겨야만 했다. 시골에서 상경해 살을 빼고 악착같이 회사에서 일을 했을 그녀에게 그건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 것이 분명하니까. 욕망은 항상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앞날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뒤흔들어놓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여기에 결정적인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크리스티나는 악령들에게 말단 직원인 자기에겐 힘이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최종선택은 팀장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자신이 한 것이었다. 전형적인 호러영화의 캐릭터들처럼 운이 나쁘거나 호기심을 못 참았다거나, 악의와 의도를 갖고 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그녀도 갈등을 한 후에 어렵게 내린 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악령을 불러들인 셈이었다. 

 
그녀의 내부에는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출몰하는 악령들은 마치 그녀가 만들어내는 환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첫 화면에 어린 남자아이가 집시의 물건을 훔쳐서 크리스티나와 같은 저주를 받고 결국 땅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행동에 대해서 갖게 되는 죄책감이 아주 적더라도, 그 죄책감은 조그만 자극에 의해서도 폭발해버릴 듯이 커진다. 결국 자라난 죄책감은 다시 악령의 방문을 부르고, 그 악령의 방문은 다시 죄책감을 건드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점진적으로 공포가 쌓여가는 대부분 공포영화들의 방식처럼, 저주는 3일간 점점 강도를 더해간다. 
 
 그녀는 과거를 극복하고 싶어 했다. 시골 출신에다가 살이 통통한 자신의 과거 모습은 콤플렉스 그 자체였다. 이러한 마음을 반영하듯, 그녀는 부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예전 사진을 지긋지긋하다는 듯 구겨버린다. 하지만 악령들은 그녀의 면전에다 대고 소리친다. 뚱뚱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실제로 영화 곳곳에는 그녀를 비웃는 얼굴들이 등장한다. 악령에 시달리다가 벼랑 끝까지 몰린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마구 퍼먹는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어떤 심리상태에서 폭식을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흡사 거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유쾌하지 않은 환상과 악령들은 지우고 싶은 과거라는 콤플렉스를 먹고 더욱 무럭무럭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불안은 영혼을 잠식해간다.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악령들보다도 날 더욱더 무섭게 했던 것은 공포의 씨앗이 바로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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