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경기를 끝낸 레슬러는 몸을 숙인 채로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숨 넘어 갈 것 같은 기침소리가 이따금 섞여있다. 이어서 카메라는 지쳐 보이는 그의 등을 묵묵히 뒤쫓아 간다. 그는 등에 인생이라는 짐짝을 짊어진 듯, 그로 인한 수고가 고스란히 묻어져있다. 그의 등만 보고도 짠해지는 이유다.

 여기 늙은 레슬러가 있다. 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스테로이드와 진통제 값이 버겁고, 집세가 밀려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그를 돌봐줄 사람 하나 없다. ‘랜디 램’으로서의 화려한 전성기가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제는 조금씩 그를 끌어내리는 외로움까지, 그는 물질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곤궁하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스트립쇼에서 일하는 캐시디를 보는 것 뿐. 캐시디 역시 나이가 많다고 고객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랜디와 캐시디 모두 각자의 일터에서 늙었다는 이유로 버티기가 힘들어진다. 또한 둘 모두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역할을 연기한다는 면에서, ‘쇼’ 비즈니스에서 필요로 하는 가면을 쓰고 있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랜디는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을 바라는 관중들에게 호응하기 위해서 피를 흘리지만 무적인 ‘랜디 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남성들의 성적인 판타지를 채워주기 위해 캐시디는 두꺼운 화장으로 변장한다.


 관객들이 무대에 자신들의 욕망을 강력하게 투사한다는 면에서, 감독은 이제는 ‘퇴물’이 된 두 사람의 모습을 묶으려고 했다. 하지만 랜디는 팬들을 거느린 챔피언이고 캐시디는 관능적이라기엔 너무 애잔한 춤을 추는 쇼걸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영웅으로 남는 레슬러가 지배의 무대를 가지고 있다면, 고객들이 돈을 찔러 넣으며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쇼걸은 소외의 무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랜디와 캐시디 같은 이들처럼 스러져가는 모든 것들은 슬픔의 그림자가 있다. 무심한 세월과 잔인한 인생의 칼날에 찔리고 긁히며 오게 된 삶의 한 자락을 들추어본다. 남은 것은 몸의 통증, 썰렁한 관객석. 랜디와 닌텐도로 레슬링게임을 하던 아이는 게임을 하다가 툭 내뱉는다.
"이 게임은 구려". 그러면서 새로 나온 전쟁게임이 재미있다고 일러준다. 더 이상 랜디의 ‘램 잼’을 재밌어하지 않고 아이가 새로움을 쫓아갈 때, 더는 캐시디 자신을 보는 관객이 없을 때, 그들은 가늘게 떨리는 뒷모습으로 쓸쓸함의 언어를 대신한다. 랜디에게 청춘과 등가어인 레슬링은 침체되어간다. 80년대 건진앤로지스, 데프 레퍼드, 머틀리 크루가 90년대 커트 코베인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 이라크전을 다룬 전쟁게임은 시시한 1:1의 레슬링 대신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레슬링이 쇠락하듯 랜디의 몸도 쇠잔해진다. 그는 이제는 80년대의 잘나가던 랜디 램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뒤짚어보려는 듯 랜디는 가족과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두 버림을 받고 20년 만에 보란 듯이 아야톨라와의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세상이 날 할퀴어서 내 가슴이 찢어진거야.”
 랜디는 이제는 레슬링이 없는 세상을 기웃거리지 않고 자신을 한없이 받아주는 사각의 링 위로 다시 올라선다. 

 * 미키 루크와 마리사 토메이의 인상적인 연기에 조금 뻔한 듯한 후반부의 줄거리는 그리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들은 자서전적인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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