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아리의 친구는 26마리의 개가 자신을 쫓는 꿈을 2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꿔왔다고 말한다. 알고 보니 아리의 친구는 이스라엘 군인으로 레바논에 참전한 19살 때 레바논 마을에서 짖는 개 26마리를 죽인 경험이 있었다. 이 영화는 전쟁을 기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1. 기억의 조각들


 나는 요즘 종종 끔찍한 악몽을 꾸다가 몸서리치면서 일어날 때가 있다. 그때의 영상들은 너무나도 생생해서, 꿈을 꾼 것이 아니라 잠시 그곳에 다녀온 듯한 느낌마저 갖게 한다.  꿈의 영향력은 프로이드부터 융까지, 많은 정신분석가들의 연구대상이었다. 꿈 분석가들은 꿈이 너무나 뚜렷할 경우, 무의식이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나는 요즘 매일 무의식으로부터 강한 의미가 담긴 편지를 한 장씩 받는 것이다. 하지만 온갖 상징과 기호로 이루어진 암호를 해독하기란 쉽지 않다. 


 왜 자꾸 꿈은 의식의 문을 두드리는 것일까. 아리는 친구 대신 기억의 미로에 돋보기를 들이대며 그 이유를 추적하고자 한다. 이는 비단 친구의 문제뿐만 아니라 레바논 참전 때의 기억이 전혀 없는 아리에게도 중요한 문제다. 아리는 오로지 하나의 영상만을 간직하고 있다. 바닷물에 반쯤 잠겨서 조명탄이 떨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다가, 친구들과 그곳으로 향하는 영상. 아리는 친구들을 한명씩 만나면서 자신이 전쟁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그 기억들을 복원해나가기 시작한다.

 
 망각은 기억의 선물이다.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방어기제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어버린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기억에 시달린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살기 위해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기억을 시간의 강물에 띄워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망각은 성찰하는 인간의 기능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리에게 망각은 불가피하게 일어났지만, 모두가 과거를 그저 망각하기만 한다면, '역사의 교훈'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이다. 추악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으로 우리는 과거를 기억해야만 한다.



#2. 전쟁의 파편들

 
 모든 분량을 실제로 촬영하고 편집한 필름을 토대로 2,300개의 원화를 스토리보드로 그려내는 작업을 거쳐서 완성된 <바시르와 왈츠를>는 전쟁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억을 재생시켜나가는 아리의 여정은 꽤나 다큐멘터리적이고, 이에 반해 영상은 초현실적이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집, 건물, 도로, 그리고 삶. 총체적인 파괴의 현장에서 인간의 내면 역시 무사할 순 없다. 아리와 친구들이 퍼부은 총탄으로 사람들은 죽어가지만, 아리와 친구들의 내면 역시 죽을 것처럼 황폐해져 간다. 영화는 전쟁으로 인하여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초토화되는지, 독특한 영상으로 보여준다. 애니메이션의 영상은 전쟁의 참상을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지만, 이는 참전했던 사람들이 전쟁을 삼킨 방식 그대로이다.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군인들은 때론 망각으로, 때론 부정으로 전쟁의 실상을 회피한 것이다.

 
 그렇기에 전쟁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은 감독의 의도에 적중한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무지막지한 전쟁의 무게를 애니메이션으로써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 

 
 가자지구의 폭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이 1000명이 넘었다. 아리가 겪었던 대량학살의 현장은 20년을 거슬러 올라와 또 다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쟁의 상흔은 
변함이 없다. 이 영화의 울림이 더욱더 깊은 것은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뼈아픈 사실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