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다수 포함

 난 개인적으로 유하 감독을 좋아한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그가 만들었던 영화들은 그만의 독특한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쌍화점> 역시 속으로 많은 기대를 품으며 개봉일을 기다려왔다. 특히 고려 역사 속의 동성애를 어떻게 그려냈을지, 동성커플은 어떻게 그려냈을지가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개봉일 다음 다음날 극장으로 달려가 본 <쌍화점>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에게 실망만을 안겨줬다.

1. 빈약한 스토리라인, 허무한 결말

 다수의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이 영화은 무엇보다도 줄거리 상호간 연결고리가 가진 치밀함이 부족하다. 홍림은 왕의 총애를 받으며 잠자리까지 함께하는 건륭위(왕을 호위하는 미남 무사들의 집합) 총관이다. 왕은 홍림이 어렸을 적부터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후사 문제로 왕위가 위태로울 지경까지 가자, 그는 '여자를 품을 수 없는' 자신 대신 믿을 수 있는 홍림을 왕후의 침실로 보낸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영화가 그토록 홍보에 열을 올린 '격정'의 고려 야사가 시작된다. 공민왕의 이야기라는 실제적 근거도 있다지만, 감독은 동성애 코드에 이성애 정사신을 적당히 버무리므로써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빈약한 플롯은 감독의 욕심을 받쳐주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일단, 홍림과 왕후가 이른바 '연모'를 품게 되는 과정은 개연성이 매우 떨어진다. 단 몇번의 성관계만으로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물론 논쟁적인 주제이다. 육체가 먼저일까, 감정이 먼저일까. 혹자는 육정만으로도 감정적인 정이 싹트고 그 정이 진정성이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홍림과 왕후가 뿜어내는 열정은 쉬이 납득할 수가 없다. 평소 홍림과 왕의 은밀한 관계에 질시의 눈빛을 보내던 왕후가 홍림과 섹스를 함으로써 갑자기 홍림에게 연정을 품게 되다니, 전혀 설득력이 없다. 그래서 이들의 섹스는 섹시하다기보다는 그저 아이들의 불장난 같아 보인다. 

 그리고 반드시 언급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왕과 홍림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은 판타지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뜬금없고 억지스럽다. 서로가 서로를 애증의 칼날로 죽인 마당에 갑자기 다정스럽게 말을 타면서 웃는 장면이라니, 황당하지 않은가.



2. 동성애를 가장한 이성애의 범람

 <쌍화점>은 동성애 코드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다. 나 역시 감독이 동성애를 어떻게 다루었을 것인지에 대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기다려왔다. 하지만 이 역시 적당히 뿌린 양념일 뿐, 진지하게 동성애 주제를 이야기 속에 녹여내려는 노력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왕의 사랑은 짝사랑일 뿐이다. 왕은 묻는다. "나를 단 한번이라도 정인으로 생각한 적이 있느냐" 홍림은 죽어가는 순간에도 이를 악물고 대답한다. "단 한번도 없습니다." 이에 따르면 결국 왕은 권력으로 홍림을 공공연하게 강간해왔을 뿐이고 이들의 관계는 진정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이 둘의 관계는 왕의 일방적인 구애였을 뿐 홍림은 그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인 적이 없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양성애자로 그렸을 수도 있는 홍림의 캐릭터를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 홍림은 '게이는 여자와의 섹스를 경험한 후 이성애에 눈을 뜰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답습할 뿐이다.

 그에 비해 이성애 정사신은 범람한다. 다양한 체위가 나오지만 잊을만하면 또 다시 등장하는 배드신은 점점 지루해져간다. 감독은 강도 높은 다수의 배드신을 의도했을지도 모른다. 송지효와 조인성의 농도짙은 배드신은 개봉 전부터 그것 자체만으로도 화재였으니까.   

3. 뿌리잘린 자의 절규, 남근주의  

 왕은 결국 왕후와 섹스를 하는 홍림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거세시켜버린다. 이는 결국 왕후와의 섹스를 다시는 못하게 하려는 왕의 광기가 표출된 것이다. 왕에게 다시 돌아가려는 홍림이 욕정에 눈이 멀어 다시 왕후와 관계를 갖는 순간 이미 예정되어 있던 그의 미래. 치정의 극단, 끝에는 권력에 의한 남성성의 거세가 있다.

 남성의 상징을 거세당한 홍림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왕을 죽이러 왕궁으로 향한다. 그는 왕에게 돌아가 예전처럼 충성을 바치는 대신 칼을 겨눈다. 이따금씩 절규가 들린다. "뿌리가 잘렸으니 내 목숨은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남성에게 성기는 그의 자존심의 응축이고 이는 목숨과도 바꿀만한 엄청난 일인 것이다. 여기에서 성기 중심의 남성주의적 섹스와 가치관이 엿보인다. 섹스는 반드시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더 이상 발기가 되지 않는 그의 성기는 왕후에게 갈 수 없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쌍화점> 인터뷰가 나온 신문에서 유하 감독은 이런 말을 했었다. 결혼제도와 학교제도, 조폭의 생리를 통한 인간 본성의 발로를 그렸었다면 이젠 동성애를 통해 표현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감독의 의도는 의도로만 그친 듯 보인다. 동성애는 포장을 위한 무늬였을 뿐, 결국 작위적인 이성애자 커플에 대한 동성애자 왕의 질투가 빚어낸 삼각관계 치정극이 영화의 핵심이다.

 왕후의 캐릭터는 단면적이다. 왕과 홍림의 관계에서 왕후가 수동적인 입장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특히 이 영화에서는 거기에 더해 정치적으로 나름의 입장이 있었던 전반부의 왕후는 후반부로 갈수록 무모하기 짝이 없어진다. 왕 역시 마찬가지다. 왕후를 후사를 낳기 위한 수단적인 존재로 보았던 왕은 자신이 벌린 일을 감당하지 못해 비극을 자초하게 된다. 결국 자신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서서 두 사람이 관계를 갖지 않자 치정에 눈이 먼 게이왕은 광기로 피의 매듭을 짓는다. 영화는 금기의 사랑, 동성애자 왕과 신하 등의 뻔지르르한 포장만 했을 뿐 속은 부실한 빚살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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