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싱글맨>은 대단히 고혹적이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톰 포드의 스타일리쉬한 연출을 보고 있자면, 결국 예술이란 분야는 두루두루 통하는거라는 부러움 섞인 생각이 들 정도. 구찌를 살려낸 실력있는 디자이너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십분 살려, 영화 곳곳에 패셔너블한 숨을 불어넣었다.
그 중 소품이 단연 돋보인다. 찰리(줄리언 무어)의 핑크색 담배와 드레스, 헤어스타일은 이혼 후 권태를 감당하지 못해 또 다른 로맨스를 꿈꾸는 중년 여인의 심리를 보여준다. 조지(콜린 퍼스)는 교수라는 직책 뒤에 게이라는 성 정체성을 두껍고 검은 안경으로 숨기고 있다. 케니(니콜라스 홀트)는 이십대에 들어선 청년이 가질법한 기존 관습에 대한 풋풋한 반항심, 하지만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순수함을 과시하듯 보송보송한 흰색 털니트를 입고 있다. 60~7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인물의 상황과 특성에 맞는 소품을 배치한 감독의 세심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탄탄한 소품들을 바탕으로 영상들은 영화 전반을 유려하게 흐른다. 특히 스크린을 화폭 삼아 색깔을 자유자재로 배합하는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붓이 닿아 물감이 번지듯, 잿빛이었던 세상은 조지의 감각이 활짝 열리는 순간 한폭의 수채화처럼 색이 칠해지는 것.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했던 동반자 짐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조지는 그와의 행복했던 지난 날을 추억하며 버틴다. 그것은 적극적인 애도의 방식이라기보다는 연인의 부재를 감당해야만하는 사람의 애처로운 노력에 가깝다. 하지만 조지가 자살을 결심한 이후 얼마 남지 않은 일상에서의 삶을 음미하기 위해서, 그는 마법적인 순간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조지는 평소에는 눈여겨 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여직원의 입술 색깔이나 향수 냄새, 땀흘리며 농구를 하는 건장한 사람의 근육, 옆집 여자아이의 손짓에 순간순간 매료된다. 강아지를 쓰다듬는 손길은 부드럽고, '갓 구운 식빵 냄새'를 느끼는 그의 표정은 아련하게 미소짓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잃어버린 삶의 에너지다. 시간은 멈추고, 잠시나마 그 에너지를 오감으로 충분히 느낀다. 삶을 스스로 마감하기로 결심한 한 인간의 절실함으로.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한 적 있는 이러한 마법적 순간들을 경험하고 제자 케니와 가까워지면서, 그는 점점 삶의 의지를 되찾는다.
다소 과하다 싶을 정도로 그 순간들을 세심하게 영상으로 묘사하는 감독이 엔딩에 넣은 나레이션은 지금까지의 의도를 짐작하게 해준다. 조지는 말한다.
"A few times in my life Iʼve had moments of absolute clarity.
완벽하게 명료한 순간들이 인생에서 몇 번 있었다.
When for a few brief seconds the silence drowns out the noise and I can feel rather than think...
몇초의 시간동안 소음은 전혀 들리지 않고, 나는 생각을 하는 대신 느낀다.
And things seem so sharp and the world seems so fresh.
모든 것들은 선명해보이고 세상은 생기로 가득하다.
I can never make these moments last. I cling to them, but like everything they fade.
하지만 이 순간들이 지속되진 않는다. 내가 아무리 매달려도, 다른 모든 것들처럼 희미해진다.
I have lived my live on these moments.
이 순간들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They pull me back to the present and I realize that everything is exactly the way it was meant to be.
그 순간들은 날 현재로 끌어당겨주고, 모든 것들이 원래의 모습대로 있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을 '현재로 다시 끌어당겨놓으며 인생을 살게 하는 순간들'을 조지가 체험할 때, 수험생 시절 탔던 새벽 지하철에서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졸고 있던 이름 모를 여인과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다홍빛 아침햇살을 바라보며 느꼈던 충만한 순간을 관객인 나도 회상할 수 있다. X가 헬맷을 쓰고 네 발 자전거를 굴리며 나를 향해 귀엽게 미소 지은 순간도, 함께 영화를 봤던 N이 하얀 이를 살짝 드러내며 수줍게 웃던 순간도.
기본적으로 조지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있지만, 이런 장면들에서 집중하고 있는 건 감각이다. 감정보다는 감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순간들이 그 자체로써 온전한 의미를 내뿜을 수 있다. 온 감각을 열게 하는 그 순간들은 조지를 지탱해주고, 나의 영화보기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엄밀히 말해서, 정성일씨가 말한 것 같은 '마법적 황홀함'이라는 시네필의 경험 핵심까지 이 영화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건 아니다. 단지 조지가 '그 순간'들을 느낄 때, 관객의 눈은 조지의 눈으로 잠깐이나마 변해 그가 느끼는 마법적 황홀함을 관찰하는 입장에 놓인다.
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를 여타 다른 선 굵은 퀴어 영화들과 차별화시켜주는 지점이다. 감독은 게이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삼으면서도 거기에 완전히 함몰되지는 않는다. 코미디언도 들러리도 그렇다고 게이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동성애자를 완성했다. 성정체성으로 방황했을 시기를 겪고 이제는 연륜이 쌓여 사랑하는 이와 안정적인 생활을 했던 중년의 게이가 느끼게 되는 상실감과 이를 극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순간들에 대한 예찬. 섬광 같은 순간들이 끌어당기기에 현재에 발을 디딜 수 있는 그는, 추억으로 숨쉬는 과거와 마술적인 찰나를 붙잡어 현재를 견디는 고독한 싱글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