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순간

글조각들 2010. 6. 26. 02:02


일상에서 문득, 흡사 연출된 것 같은 광경을 목격할 때가 있다. 어쩌면 목격보다는 포착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세상은 변함없이 흘러가니까, 운이 좋거나 눈이 밝으면 그렇게 어느 순간을 낚을 수 있는 것



1.
학원 베란다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두서 없이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 맞은편 건물 12층 정도 되는 창문에 비닐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건물이 지어졌을 때부터 있었을 법한 비닐포대는 '소리 없이 아우성' 치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었다. 누렇게 바래고 흙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볼품 없는 비닐포대를 바라보며 2시간 동안 이방인처럼 앉아있느라 누렇게 떠버린 마음을 다소 누그러뜨렸다. 7층 아래에서 내려다본 행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멍하니 서서 담배를 피고 있었으며 어떤 이는 사람들의 일관된 무시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닐포대도 내 머리 위에서 쉬지 않고 펄럭이고 있었다.  
이상한 위로였다. 마치 <아메리칸 뷰티>의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영상'을 볼 때 느꼈던 생소한 아름다움 같은.




 




2.
학원에서 탈출하듯 빠져나온 후 갑자기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앨범이 못 견딜 정도로 듣고 싶어서, 향뮤직에 어슬렁어슬렁 들렀다. 금요일 저녁이라 평소보다 사람이 북적이는 편이었고, 좁은 매장 안이 오늘따라 더욱 비좁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로 꽉 찬 그곳에서 유난히 밀도 높은 숨을 내뱉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양복을 입은 40대 중반의 남자는 신촌에서 잡은 술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해서 시간을 때울겸 음반매장에 들렀을지 모른다. 그는 이제 막 퇴근한 듯 얼마간 찌든 모습이었다. 하지만 얼굴의 기름기 사이로는 음악에 대한 거만함이 찐득하게 묻어나보였다. 젊었을 때 음악 깨나 들었을 법한 사람의 전형적인 말투로, 점원에게 'Badland'라는 밴드를 물어보았으나 점원이 이름을 알지 못하고 스펠을 되묻자 귀찮은 듯이 '황무지의 그 Badland'라고 대답해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난 남자 뒤에 서서 키스 자렛과 나왕 케촉의 CD를 계산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모든 광경이 참 딱할 노릇이었다.  
집에 와서 훌륭한 두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있다보니 아까 그 남자가 자꾸 생각났다. 점원도 알지 못하는 밴드를 알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매니아'라고 지칭하며 우쭐댈 만큼 음악을 많이 들었을테지. 하지만 고급 취향의 소유자인 그는 알고 있을까. 취향은 특이할지라도 자신의 태도는 클리셰로 가득하다는 것을.
풍자극의 한 장면으로 쓰면 딱 좋을 만한 모습



3.
합정역 부근 골목길을 지나가던 리어카 한 대가 떠오른다. 중년의 여성은 리어카 안에 방석과 신문지 등으로 좌석을 만들어서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고, 목에 수건을 두른 남성은 고된 노동에 단련된 듯한 단단하고 까무잡잡한 팔뚝으로 리어카를 끌고 갔다. 매연을 내뿜으며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서 보행자들을 성가시게 하는 자가용들이 넘쳐나는 번화가를 빗겨나면 낡고 초라한 아날로그 리어카가 느리게 지나간다. 혹시 생계가 달려있을지도 모르는 현실적인 문제를 싸구려 감상으로 낭만화시키는건 아닌지 경계하면서도, 그 모습 자체는 의심할 여지없이 소박한 빛을 발했다. 
무슨 말을 계속 주고 받는 커플과 서서히 멀어져가는 리어카 한 대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