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게 시작한다. 스모키한 눈화장으로 무장한 희수의 냉정한 한마디, “돈 갚아, 350만원”

헤어진 연인이 돈 때문에 다시 만난다는 설정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보통의 재회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거나, 서로 새로 시작한 연인이 곁에 있는 어색한 상황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추억을 낳기에,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 당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며 돌려받을 수 없는 돈을 허공에 날리며 후회하는 수밖에 없다. 헤어진 마당에 손익을 따지며 헤어진 연인을 만나 닦달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추억에 대한 먹칠이며 지나간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영화 속 새미의 말처럼 “그깟 몇 푼 하는 돈 받지 않아도 상관없는 것”(사실은 어쩔 수 없는)이 되어버린다.

 그렇기에 희수는 돈을 받아야겠다는 목적의식으로 독하게 무장한다. 로맨스는 비즈니스보다 앞서며 돈은 폼보다 못한 것이 되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이 병운을 향해 일갈하는 희수의 말은 호기심까지 자아낸다. 왜 굳이? 하지만 악착같이 돈을 받으려는 희수에 대한 별다른 배경설명 없이, 영화는 꾼 돈을 갚기 위해 능청스럽게 돈을 꾸러 다니는 병운과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자르는 희수의 도시 로드무비가 되어간다. 350만원을 채우려는 채무자와 이를 감시하는 채권자의 엉뚱한 동행. 



 난 병운 같은 남자를 안다. 그리고 당신도 병운 같은 남자를 알 것이다. 주위에 꼭 한 명씩 있는 이런 스타일의 남자는 자신은 편하지만 주위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미운 짓을 일삼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말로는 뭐든지 하지만 당면한 현실은 초라한 사람이다. 그래서 웃기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화가 나는 사람이다.


 독하게 마음먹었지만 마음만큼 독하지 않은 희수는 병운과의 줄다리기에서 슬금슬금 손을 놓기 시작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희수의 감정적인 흐름이다. 돈을 꿔가고 1년 동안 잠수를 탄 병운에 대한 분노는 초기에 내뱉는 그녀의 가시 돋친 말에서 읽을 수 있다. 다른 사정 알 필요 없이 돈만 받아서 어서 이 피곤한 남자와 헤어지고 싶은 희수는 그러나 추억을 자극하는 병운의 말에 몰래 그것을 되새김질한다. 버스에 타고 있는 다른 남녀의 모습에서, 처음에 말을 걸던 병운을 떠올리는 그 베란다에서, 그녀의 추억은 의지와 상관없이 되살아난다. 시종일관 농담 따먹기를 하는 병운을 어처구니없어 하면서도 그녀는 병운은 물론 자신도 예상치 못하게 그를 동정하게 되고 자신에 대한 연민을 표출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희수와 병운의 소통방식은 끝끝내 엇갈린다. 80만원 받는 비정규직으로는 일하기 싫다는 그녀의 말에 병운은 차창의 와이퍼가 왜 이렇게 됐냐고 받아치고 그녀는 넌 왜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그런 말을 하냐고 타박한다. 병운을 흘겨보던 희수는 급기야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울음을 터트리는 희수.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병운은 결코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녀도 그것을 알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병운의 어깨가 아닌 시간의 어깨에 기대어 운다. 과거의 시간을 공유하던 연인도, 팍팍한 자신의 현재도 잠시나마 눈물 속에 멈추어 머무른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위로의 눈물이다.


 희수는 어찌 보면 의존적인 인물이다. <여자, 정혜>와 <러브 토크>에서 홀로선 여자들의 섬세한 감정을 그려냈던 이윤기 감독은 <멋진 하루>에서 강한 척 하는 희수의 여린 내면을 잡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나약함을 애써 숨기려는 희수의 힘겨운 노력일 뿐이고 그 노력은 병운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서 쉽게 탄로나 버린다. 버거운 현실을 혼자 감당하려는 그녀에게 병운은 울 수 있는 핑계거리를 제공해준다. 다른 방식의 소통방식을 가진 그녀에게 병운은 여전히 그저 타인일 뿐이니, 그녀에겐 단지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가차 없는 그녀의 말은 병운의 농담 앞에 속수무책이다. 그러기에 차의 와이퍼는 고쳐지지만, 350만원의 돈은 결코 채워지지 못하고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기대 역시 충족되지 못한 채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영화는 긍정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병운에게 순순히 돈을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정받는 병운의 천진함을. 그녀의 복잡한 내면도 병운의 단순함 앞에서는 손을 들 수 밖에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정서는 결코 맞춰지지 않는 퍼즐 조각과 같다. 시간에 따른 느슨함 속에서 조금씩 풀리는 그녀의 화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원망은 풀릴 수 없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야만 다양한 성향을 가진 인간들이 사는 이 사회에서 한 쪽만이 억울하게 피해의식을 갖은 채 살거나 고통을 떠안지 않을 수 있다.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철없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용서받는 것은 공평하지 않고, 병운이 빚진 것은 350만원만이 아니라 그녀의 감정 노동이기도 하니까. 해서, 마지막 장면에서 웃는 그녀의 웃음은 억지웃음 같아 보인다. 그녀는 많이 지쳐있고, 지쳐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시덥 잖은 농담이나 가벼운 말장난이 아니라 진정한 공감과 위안의 말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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