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의 단백질 커피>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최규석 때문이었다. 최규석은 내가 칭송해 마지않는 작품 <습지생태보고서>를 비롯해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최근작 <대한민국원주민>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잘나가는 만화가이다. 그의 작품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셀마의 단백질 커피>는 최규석 작품 <사랑은 단백질>을 포함해서 <Wanted>,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라는 세 편의 단편이 묶인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이다. 난 <사랑은 단백질>에 대한 해바라기 사랑으로, 나머지 작품은 꿩 대신 닭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왠걸, 내가 닭이라고 생각한 작품들도 사실은 잘생긴 꿩들이었다.  



 <Wanted>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한 스포일러이므로 관두겠다. 하지만 개성 있는 스타일과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구성력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말은 하고 싶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무림일검이 현대에 와서 자판기로 환생한다는 다소 엉뚱한 소재를 이용했다. 자판기와 인간 사이를 왔다 갔다 변신하는 무림일검이 자아내는 세밀한 유머가 관건이다. 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그마한 에피소드들을 웃음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여기에 덧붙여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연상시키는, 하늘을 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 비해 <사랑은 단백질>은 작품의 호흡이 너무 느리다. 원작을 알기 때문에 대사와 다음 대사 사이의 공백이 특히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은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안경 쓴 자취생의 심한 고음 목소리도 지나치게 튀고 대사 전달력이 떨어진다. 다른 에피소드들을 첨가했으면 훨씬 더 극적인 재미가 배가되었을텐데, 하나의 짧은 단편을 작위적으로 길게 늘어뜨린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원작의 취지만은 잘 살렸다.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을까. 백프로 만족하진 않았지만 나머지 세 개의 애니메이션과 묶인 종합선물세트 같은 <셀마의 단백질 커피>는 커피를 한 잔 들이켠 후의 포만감을 선사했다.


 <벼랑위의 포뇨> 등 명실 공히 인정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사랑받고 있는 요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국 애니메이션을 발굴해보는 건 어떨까. ‘한국’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의 다양성을 위해서 말이다. 재미와 완성도, 모두에서 뒤처지지 않는 한국 애니메이션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홍대 상상마당에서 상영 중인 <셀마의 단백질 커피>적극 추천한다. 참, 제목이 왜 셀마의 단백질 커피냐구? <Wanted>에 등장하는 셀마, <무림일검의 사생활>에 나오는 커피, <사랑은 단백질>의 단백질. 각 작품의 키워드를 맵시 있게 뽑아낸 재치가 돋보이는 제목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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