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계절은 바뀐다. 나무들도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고 농민들은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고 다시 씨를 뿌린다. 계절에 몸을 맡기는 인간의 삶도 변한다. 다른 인간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유아기를 지나고 자연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평생을 지나 노년기가 되면, 우리는 마침내 흙으로 돌아간다. 자궁에 머물기 전, 태초에 있었던 그곳으로.

 영화의 장기두는 노인을 말한다. "죽음은 문이야,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문". 우리는 출생, 삶, 죽음 그리고 막연하게 믿고 있는 사후의 생으로 그렇게 순환한다. 먹이사슬이 피라미드가 아니라 둥근 원 모양이어야 하는 이유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과 식물을 먹고 그 에너지로 삶을 영위한다. 그 에너지가 소진되어 육체가 더 이상 부질 없어질 때, 우리는 육체를 흙으로 되돌려보낸다. 그 흙 속에서 인간은 다음 시대를 살아갈 인간이 먹을 음식의 자양분이 된다.

 영화는 감독의 이러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바야시와 NK에이전트의 사장은 복어의 정자주머니와 치킨을 '미안스럽게도' 너무나 맛있게 먹고 매일매일 염습을 한다. 영화에서는 먹는 장면이 특히 감탄할 만큼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아마 감독의 생사관이 투영된 것이리라. 

 염습(일본에서는 관에 넣기 전의 시체를 의례절차에 따라 정성껏 닦는 전통이 있다)을 하는 사장의 모습은 고바야시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 그는 첼로 대신 염습을 택한다. 하지만 그가 가끔 켜는 첼로의 애잔한 선율은 죽은 자들을 보내는 진혼곡이나 다름 없다. 이 고(苦)의 삶을 끝내고 다음 세상으로 가는 이들에게 수고했다고, 고생했다고, 그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것들을 먹고 사는 우리들도 언젠가는 죽은 것들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는, 염습을 하는 이 둘을 통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한치의 과장이나 억지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영화는 염습을 하는 그가 불결하다며 떠난 아내가 돌아오면서 새 국면을 맞이한다. 아내 역시 고바야시가 사장을 보며 했던 결심처럼, 염습을 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고집스럽게 그 일을 계속하는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새 생명을 잉태한다. 계절은 또 다시 바뀐다. 

 새 생명이 움트고 오리와 백조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생명의 몸짓을 펼친다. 그 동안에도 염습은 계속된다. 특히 계절이 바뀔때,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한다. 고바야시는 염습을 이렇게 표현한다. "냉정하고 정확함을 요하는 이 일은 그러나 따뜻한 애정이 담긴 행위이다." 죽은 자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가장 아름답게 가꿔주는 그들은 '영원한 여행의 도우미'이다.

 죽음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무겁지 않다. 간간히 등장하는 위트와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감동을 주는 영화에는 눈물과 웃음코드가 교차한다. 삶과 죽음, 남겨진 자의 슬픔이 곳곳에 눅진하게 녹아있는 영화를 보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수건이 흠뻑 젖어있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눈물을 한 바탕 쏟고 나면, 마알간 삶의 이면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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