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어오는 이런 질감의 바람과 저런 색채의 하늘을, 그곳은 일년 내내 가지고 있었다. 하늘은 굳이 5월이 아니어도 푸르렀고, 마라톤을 하기 위해 발을 구를 땐 먼지바람 대신 진한 풀향기가 날렸다. 가뜩이나 세상이 한없이 아득하기만한 갓 8살의 어린 아이에게 주변의 모든 것들은 크고 넓고, 무서울 만큼 거대했다. 미국이라는 저 '풍요의 나라'에서, 변하지 않는 휴양지 같은 날씨에다 자가용으로 십분만 달리면 떡 벌어진 바다를 볼 수 있는 천혜의 지역 샌디에고(San Diego)에 가족과 함께 건너가서 살았던 시절이 이제는 편린으로만 기억 어딘가에 묻혀있지만, 문득 그것을 불러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오늘처럼 빨려들어갈 것만 같은 하늘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리워해 마지 않는 희미한 향기가 실려 올 때.
단지 한 덩어리의 브라우니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갈색의 각진 브라우니는 옆집 할머니 같은 60대 교감 선생님의 네모난 락앤락 통에서 우리의 손으로 하나씩 옮겨졌다. 마치 미사에 줄을 서서 영성체를 기다리는 천주교인처럼, 이번주 주번이 된 각기 다른 피부색의 아이들은 교감 선생님 주위에 빙 둘러서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그 당시 나는 한글이나 영어 중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해서 많은 것들을 손짓과 발짓으로 대신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이 급해서 나왔다가 미로 같은 학교 안에서 길을 잃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청소를 하시는 중년 히스패닉 여성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친하게 지내서 아직도 기억나는 아프리카계 (학교 행사 때 이 아이의 풍채 당당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친구라고 소개받은 나를 만면 가득한 미소와 함께 와락 껴안아주셔서, 처음으로 다른 인종에게서 '정(精)'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와 일본계 미국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언어와 문화적 장벽 너머에서 그저 나를 '눈 찢어진 중국애'로 보는 사람들과도 마주쳐야 했다.
브라우니를 손에 든 우리는 잠시 서로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없이 오물거리며 이어지는 훈화 말씀을 들었다. 어차피 나는 단어 몇 개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브라우니가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년기의 미각을 강타한 이러한 맛들은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천상의 맛이라고 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묘사할 수 있는 어떠한 '맛'이라기보다는 놀라운 '순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맛이라는 감각을 설명하는게 무리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브라우니의 달달하고도 찰진 맛과 뭉쳐져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걸 먹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다. 연한 코발트빛의 한없이 파란 하늘. 목이 메일테니 마시라고 누군가가 쏟아놓은 음료수 같기도 했던 그 하늘은 브라우니의 갈색 빛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월마트에서 샀던 과자와 빵들은 오로지 설탕으로만 만든 것처럼, 풍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달거나 미친듯이 짜거나. 이도저도 아니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맛이거나. 그것들은 전시를 위해 만들어놓은 음식 모형처럼 어색하고 거북해보였다. 그런 와중에 맛보게 된 홈메이드(home-made) 브라우니는 아마도 영양상으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겠지만 심리적으로는 훌륭한 기능을 해준 'earth-made' 쿠키였다. 미국 땅이 처음으로 내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넨 느낌이랄까. 나는 그 인사를 받고 나서 약간은 태평해졌다. 내가 붙인 이름하여 '브라우니 정서'는 일종의 이런 것이다; 여기에도 따뜻한 손맛이 들어간 음식이 있으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고. 새파란 하늘 아래 뛰어놀다가 말이 안 통하면 그냥 빙긋 한 번 웃으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우리는 함께 이토록 맛있는 브라우니를 먹었으니까.
단지 한 덩어리의 브라우니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갈색의 각진 브라우니는 옆집 할머니 같은 60대 교감 선생님의 네모난 락앤락 통에서 우리의 손으로 하나씩 옮겨졌다. 마치 미사에 줄을 서서 영성체를 기다리는 천주교인처럼, 이번주 주번이 된 각기 다른 피부색의 아이들은 교감 선생님 주위에 빙 둘러서서 조용히 차례를 기다렸다.
그 당시 나는 한글이나 영어 중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습득하지 못해서 많은 것들을 손짓과 발짓으로 대신했다. 한 번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이 급해서 나왔다가 미로 같은 학교 안에서 길을 잃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청소를 하시는 중년 히스패닉 여성 앞에서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친하게 지내서 아직도 기억나는 아프리카계 (학교 행사 때 이 아이의 풍채 당당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친구라고 소개받은 나를 만면 가득한 미소와 함께 와락 껴안아주셔서, 처음으로 다른 인종에게서 '정(精)'이라는 감정을 느껴보기도 했다) 와 일본계 미국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언어와 문화적 장벽 너머에서 그저 나를 '눈 찢어진 중국애'로 보는 사람들과도 마주쳐야 했다.
브라우니를 손에 든 우리는 잠시 서로를 힐끗 바라보고는 말없이 오물거리며 이어지는 훈화 말씀을 들었다. 어차피 나는 단어 몇 개만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브라우니가 너무나 맛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유년기의 미각을 강타한 이러한 맛들은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천상의 맛이라고 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것은 묘사할 수 있는 어떠한 '맛'이라기보다는 놀라운 '순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맛이라는 감각을 설명하는게 무리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브라우니의 달달하고도 찰진 맛과 뭉쳐져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걸 먹다가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다. 연한 코발트빛의 한없이 파란 하늘. 목이 메일테니 마시라고 누군가가 쏟아놓은 음료수 같기도 했던 그 하늘은 브라우니의 갈색 빛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월마트에서 샀던 과자와 빵들은 오로지 설탕으로만 만든 것처럼, 풍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달거나 미친듯이 짜거나. 이도저도 아니지만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맛이거나. 그것들은 전시를 위해 만들어놓은 음식 모형처럼 어색하고 거북해보였다. 그런 와중에 맛보게 된 홈메이드(home-made) 브라우니는 아마도 영양상으로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겠지만 심리적으로는 훌륭한 기능을 해준 'earth-made' 쿠키였다. 미국 땅이 처음으로 내게 제대로 된 인사를 건넨 느낌이랄까. 나는 그 인사를 받고 나서 약간은 태평해졌다. 내가 붙인 이름하여 '브라우니 정서'는 일종의 이런 것이다; 여기에도 따뜻한 손맛이 들어간 음식이 있으니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고. 새파란 하늘 아래 뛰어놀다가 말이 안 통하면 그냥 빙긋 한 번 웃으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우리는 함께 이토록 맛있는 브라우니를 먹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온 뒤 지금까지, 보이는 족족 온갖 종류의 브라우니를 사먹었던 건 그 때 그 맛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모든 시도가 실패하듯이, 나 역시 그에 준하는 브라우니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한 입 먹었을 때 스며드는 아쉬움에도 어느덧 익숙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는 그런 맛을 가진 브라우니를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시는 맛볼 수 없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맛있고 훌륭한 브라우니로 남은 셈이다. 어쩌면 그 맛은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되짚어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 같은 하늘이 보이는 날, 이런 하늘 아래에서 먹었던 브라우니를 떠올려보는 일은 분명히 일상을 반짝이게 해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