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라노_연애조작단>, 김현석
학림의 단골이신 백기완 선생님께서 당신 제자분이 만드셨다며 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별 기대 없이 극장으로 향했는데, 펑펑 울며 나왔던 영화. 아직까지도 왜 그렇게 눈물을 쏟았는지 미스터리. 물론 울게 만드는 원인이란건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딱히 눈이 부을 정도로 울 만큼의 내용은 분명 아니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리웠던 것 같다. 그 사람이. 당시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애도하는 시기였으니,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뒤섞여서 우리의 관계를 애닮프게 추억하게 만들었다. 특히 마지막에 엄태웅이 최다니엘의 입을 빌어 바닷가에서 고백하는 장면. 신뢰와 사랑에 대해서 말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그 장면. 나는 이상하게도 엄태웅의 얼굴에 그 사람이 오버랩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오늘 아침 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아그네스 발차의 '우리에게도 더 좋은 날이 되었네'는 다시금 그 감정을 떠오르게 했고.
개인적인 눈물의 기억 말고도, 이 작품은 연극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 재미난 상징을 품고 있던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 영화가 연극에 대한 오마주처러 느껴졌다. '연애조작단'의 활동과 <시라노 드 벨주락>이라는 연극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사실 이 영화는 연극이란 매체 자체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을 꾸리던 주인공들은 경제난 때문에 연애조작단 사업을 시작하는데 영화 사이사이에 연극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는 장면도 여럿 등장한다. 연극예찬을 연극이 아닌 영화로 하는 것은 아이러니이긴 하지만,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연극이라는 매체를 구조적으로 보는 것은 아무튼 꽤나 흥미로운 경험.
1.
<레인보우(2010)>, 신수원
영화 전반에 흐르는 건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해진 '루저' 정서. 단, 우리를 체념에 빠뜨리고 냉소에 머무르게 하는 루저 정서가 아닌, 나 루저다 근데 어쩔래, 정도의 오기 혹은 호기. 그리고 섣부른 희망이 아닌 서투르지만 제법 따스한 위로. 아예 루저와 위너의 이분법을 쓸모없이 만들버린 채, 감독의 자전적인 인물로 예상되는 지완은 말한다. 우리는 루저도 위너도 아닌 그저 걸어가는 행인이라고. 1도 2도 아닌 그것도 행인3(<레인보우>의 영어제목이 'Passerby 3#' 인 것의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니까 이건 지완과 같은, 그리고 나와 같은 '행인3'을 위한 연가. 주연은 커녕 조연도 되지 못해서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그런 인물들을 위한 영화.
지완이 촬영 차 갔던 락페스티벌에서 목격했던 건 뛰어가는 사람, 머무르는 사람, 걸어가는 사람, 그렇게 다르게 움직이는 수 많은 사람들. 이렇게 다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어찌 일렬로 세울 수 있나. 냉혹한 사회가 가차없이 우리에게 루저라는 딱지를 붙이더라도 그런거 따윈 상관치 말고 어디든 가는 것. 주연배우처럼 이름 하나 없이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행인이지만, 오히려 아무도 나를 모르니 어디로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 저들이 말하는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조급해하며 발버둥치지 말고 그렇다고 자조적인 말투로 루저라며 의기소침해하지도 않을 것. 좀 어렵게 얘기하면, "공략하지 말고 낙후시키기". 지완은 회사에서 시나리오를 인정받지도 못하고 입봉의 꿈은 머나멀지만 이 모든 '실질적인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아들 시영이는 엄마의 시나리오 일부분으로 노래를 만들어 무대 위에서 부른다. 미래에 대해서 무조건 밝을거라고 과장하거나 그렇다고 정색하지도 않는 이 엔딩장면이 더없이 믿음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