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우주

글조각들 2010. 8. 13. 18:13

*
엉뚱하게도,

"그 때에 나는 이상하게도 언젠가 꿈에서 본 사막을 생각하고 있었다.
살풍경한 한 그루의 선인장이 있는 추운 겨울의 사막
먹구름이 비를 내려도 비옥해지지 않는 사막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는 모래흙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맥주                  
                                                               <Martin & John, 박희정> "



그리고 나는 언젠가 저 공간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홀로



**



Jan Saudek, The Girl I Loved, 2005





Joel Peter Witikin


이상한 사람들
을 닮아가고 있다

무수한 실수들을 연발하며 중심으로부터 멀어진채 궤도를 잃고 떠도는 위성처럼, 
어떤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존재 자체가 거창한 실수인

이상한 사람



***
무척 마음에 드는 서평
7월 3일자, 한겨레


한겨레‘나도 우주다’ 얼마나 멋진 상상인가
» 〈우주의 구멍〉
내인생의 책 /〈우주의 구멍〉
K. C. 콜 지음·김희봉 옮김/해냄.1만5000원


대학교 4학년 늦가을이었다. 수업을 빼먹고 교정을 마구 돌아다녔다. 물든 잎은 자꾸 떨어지고, 다홍색 바람이 불고, 눈부신 태양은 하늘에 장난을 치며 자꾸 서쪽으로 달아나는데, 수업을 듣는 사이 그 모든 게 사라질까봐 교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시디플레이어 건전지가 없어 귀를 열어놓았더니 취업이나 토익이나 시험 같은 말이 쏙쏙 들어왔다.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준비로 바쁜 이들 틈에서 시끄럽게 굴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먼지처럼 소리 없이 걷고 숨 쉬려고 애썼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나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니까. 숫자로 따지면 0에 가까운 존재고, 메워야 할 구멍 같은 존재니까.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면서 모든 준비를 마친 사람처럼 여유만만했다. 왜냐면, 꿈이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것을 꿈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내 안엔 희망이나 미래 같은 것만 잡아먹는 걸신이 살고 있어서, 그런 생각은 할 수도 품을 수도 없었다.


노을이 지는 쪽으로 계속 걷다가 달리 볼 것도 할 것도 없어 하늘을 봤다. 뜬금없이 아, 저게 우주구나, 싶었다. 우주라고 지구 바깥에 있는 게 아니구나. 근데 그럼, 나도 우준가? 아무것도 아닌 나도 최소한 우주다, 이건가?


그건 내 생애 최초의 자각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좋아서 실실 웃었다. 누구에게라도 명백한 그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우주야. 너도 우주라고. 몰랐지? 깜짝 놀랐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철없고 유치한 애가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 했다. 아무튼 모두들 아주 중요하고도 어려운 준비로 바쁘고 힘든 때니까.


우주와 무(無)에 관해서 나는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왜냐면, 아무도 그 세계를 진짜로 알진 못하니까. 하지만 나는 듣고 싶은 말이 더 많다. 0에 가까운, 하지만 우주인 내게 이 책 <우주의 구멍>은 별별 말을 다 해준다. 물론 책 속의 질문과 대답을 모두 이해하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랑한다. 상상하게 하니까. 왜 어떤 숫자도 0으로는 나눌 수 없지? 시간은 도대체 뭐지? 폭발이 있기 전 우주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선이 살짝 떨리면, 온 우주가 다 흔들린다. 저울의 숫자는 내 몸무게라기보다 공간의 곡률이다. 우주는 수백억 년 전 누군가의 잘못된 실험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수많은 외계인이 섣부른 실험만큼은 시도하지 않길!). 별 사이의 텅 빈 공간이 확장될수록 우주는 팽창한다. 겹겹이 겹쳐진 수백 개의 표면 중 하나에 우리 우주가 존재하고, 다른 표면엔 수십 개의 우주가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게 우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시(詩)고 철학이고 예술이니까.


삶이 너무 무기력할 때, 나는 이 책을 펼쳐들고 아무 문장이나 골라 읽는다. 그리고 내 멋대로 상상한다. 그러면 머릿속 모세혈관에 박하 향을 뿌린 것처럼 상쾌해진다. 75%의 무로 이루어진 우주와 친해지기 위해 나는 1%의 지식과 99%의 상상을 빌린다(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상한 것들을 믿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 말이다.”(39쪽)



최진영 소설가·제15회 한겨레문학상 당선자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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