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심통 맞은 표정으로 포스터를 바라본다. 중국 아이 표정은 도도하면서도 맑다. 그 위에는 외국 여성의 따스한 미소. 또야? 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이제 아이들을 내세워서 눈물샘 자극하는 영화는 그만 좀 만들지. 삐딱한 자세로 의자에 걸터앉았던 나는 영화가 전반부를 훌쩍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자세를 고쳐 앉는다. 97분이란 러닝시간은 짜임새 있는 구성 덕택에 잠시도 관객을 놓아주지 않고 후루룩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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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은 이스라엘, 등장인물은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이스라엘 스튜어디스 여성 미리와 예기치 않게 엄마와 헤어진 중국 아이, 리위. (하지만 국수를 맛있게 먹은 이후로 영화 내내 '누들'로 불린다.) 그 외 냉소적인 말투로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미리의 언니 길라와 처제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그녀의 남편. 불법체류 가정부였던 엄마가 갑자기 강제출국을 당하고 누들은 미리의 집에 덩그러니 남겨지고, 엄마를 찾으러 간다는 줄거리가 큰 가닥이다. 그와 함께 중간 중간 등장하는 미리와 길라, 길라와 남편, 남편과 미리, 길라와 마티의 관계들은 맛깔스런 양념처럼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와 적당한 거리다. 자칫하면 엄마 찾아 삼만리의 신파로 가기 쉬운 내용이지만, 카메라는 누들에서 미리로, 미리에서 길라로, 조금씩 각도를 달리하며 그들이 풀지 못했던 내면의 문제들을 하나씩 끄집어낸다.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위적이지 않은 유머와 절제된 영상. 하지만 변치 않는 따뜻한 시선.


 미리는 말한다.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누들과.." 누들의 천진난만한 눈동자는 미리가 꽁꽁 싸매두었던 상처를 비로소 마주하게 하고, 자그마한 손은 그녀의 손을 말 없이 잡아준다. 베이징에 도착하고 난 후 미리가 여행가방 속에서 누들과 손을 잡으며 그 장면은 다시 한번 재현된다. 하지만 결코 과잉되지 않도록, 극적인 요소는 최대한 배제된 채 감정의 흐름을 그저 따라갈 뿐이다.


 길라도 말한다. "너는 참 용감해. 나도 이젠 속이지 않고 살고 싶어" 자매의 포옹은 누들과 엄마와의 재회 후 그 둘의 포옹만큼이나 뭉클하다. 서로에 대한 오해 없는 진정한 이해가 그들을 소통하게 한다는 걸 미리와 길라는 보여준다. 그리고 형부의 간접적인 고백과 마티의 행동은 그들에게 올 변화를 예감하게 한다.

 결국 소원했던 그들의 관계는 누들을 계기로 국수 가닥들처럼 자연스럽게 엮여지고, 함께 묶인 그들은 따로 또 같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임을 암시해준다.


 이스라엘과 중국식의 퓨전 국수처럼, 얼핏 이질적으로 보이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마지막에 함께하는 풍경은, 그러나 전혀 어색하지 않다.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은 국경을 훌쩍 넘어버린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로 낙인찍힌, 누들의 엄마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죽거나 다쳐서 조국으로 강제로 출국 당하고 있다. 2008년 우리나라의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일까. 마지막에 함께 둘러앉은 그들의 식탁, 국수가 놓인 붉은빛 만찬을 보면서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세상을 잠시나마 꿈꾼 것은.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건, 미리와 길라가 자매가 아닌 형제로, 또 누들이 여자아이로 바뀐다면 이러한 감동을 비슷하게 줄 수 있었을까 하는 것. 형제의 관계는 분명히 다른 양상이었겠지만, 누들에 대한 감정은 변함없었을 것 같다. 해서, 난 이 작품을 '모성애'가 아닌 '우정' 혹은 (서로에 대한)'애정' 등 다른 단어로 이야기하고 싶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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