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글조각들 2015. 5. 10. 10:59

 

화장실 불을 켜지 않는다. 암실처럼 시커먼 방에 들어가서 젖어드는 어둠 속에 알몸을 숨긴다. 거울에는 네가 보인다. 고개를 돌린 채 수증기 낀 뿌연 거울을 닦고 있다. 변기 위에는 지난밤 달아난 부끄러움이 온몸을 웅크린다. 내가 변명을 늘어놓자 샤워커튼 뒤로 숨어버린다. 커튼을 젖히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빨래처럼 쌓인 미련들을 차곡차곡 개어 수챗구멍으로 흘려보낸다. 빙그르르 회오리치며 눈앞에서 사라지는 생의 허물들을 지켜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바라의낙타뿔
,